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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81 호 [기자석] 학생자치의 겨울, 봄꽃을 피우려면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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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336
이해람

2020학년도 학생자치기구 선거가 막을 내렸다. 서울캠엔 총학생회 후보가 없었기 때문인지 수능한파가 겹쳐서인지, 이틀에 걸친 선거는 한산한 겨울바람처럼 지나갔다. 단과대 학생회장 후보의 연설이 진행될 때에도 30명 안팎의 학생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거기간에도 공약이 적힌 팻말과 선거본부 부원들만이 캠퍼스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선거는 2019년 학생회에 대한 유죄선고이자, 2020년 학생자치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봐야한다.


본지 680호 <학생자치기구 인식조사>를 통해 다뤘듯 학생들은 학생자치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응답자 94.7%가 “학생자치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울캠 총학 및 경경대·문예대 학생회 불출마, 인사대 학생회 선거 투표율 미달로 인한 무효처리는 “학생자치에 관심 없다”는 무관심이 “학생자치는 필요하다”는 의식을 처절히 깨뜨린 것이다. 선거본부들이 제시한 공약들에서 이들의 정체성이 나타났고, 그 정체성은 학생들을 감동시키기 부족했다.


선거본부 공약들에서 공통적이었던 것은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의 가치에 대한 고민 역시 없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인지, 학생들의 복지와 편의를 위한 공약만이 존재한다. 이동학생회, 체전, 바자회 등 각종 이벤트는 매년 진행되어왔고, 특별함이 없다. 인식조사 결과 학생회가 “학생 요구 및 권리를 대변하고 학생들을 대표하여 학교와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답했지만 학생들의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2020년 학생자치에 봄꽃을 피우기 위한 네 가지 제언을 하겠다.


첫째, 학생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우산을 빌려주고 간식을 제공하는 것, 중고서적을 거래하는 것은 분명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진정으로 ‘학생회’가 해야 하는 일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담론을 형성하고, 대의하는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벅차다. 위와 같은 사업은 반드시 ‘학생회가 해야 하는, 학생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가 진행한다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다. 학생회가 이에서 그친다면 학교에 의견을 전달하는 의견수렴함이자 이를 집행하는 서비스센터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학생회비를 유의미하게 지출하라. 학생자치의 활성화를 염원하며 납부한 학생회비가 일부 학생들을 위한 상품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학생사회에 정말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첫 번째 과정을 거친 후, 학생들이 ‘납부하고 싶은 회비’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셋째, 중앙운영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라. 수년 전부터 학생회 공약 중 단골공약은 ‘소통’이었다. 선거운동 표어에도 ‘소통’이 빠지지 않았다. 소통의 기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학생회비 예산내역 공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공약으로 내세울 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여타 대학들에서는 학교나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통해 중운위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쌍방향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학생들은 중운위에 누가 출석했고 어떤 의제가 논의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넷째, 대의원회를 정상화하라. 상설 학생자치기구 중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회는 현재 의례적으로 열리는 행사에 불과하다. 대의원들은 예결산과 관련된 심의도 전혀 없이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타 대학에서 대의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예결산안이나 결의안 상정과 관련해 밤샘토론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 대의원회는 특별한 의제가 상정되지 않을 뿐더러 1시간 내내 의장단의 발언만 울려 퍼지다 마무리된다. 최고의결기구로서 대의원회를 정상화하고, 대의원회 안에서 건강한 논의가 지속되게 해야만 비로소 학생자치가 유의미해질 것이다.


상지대학교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전 총학생회장이자 영화 ‘졸업’의 박주환 감독은 총학생회가 “학교에 대표성을 갖고 이야기하고 협상, 협의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상명의 학생대표자들은 축제와 간식사업을 넘어선 삶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들도 학생자치에 관심을 갖고 ‘스펙을 위한 학생회’라고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