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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제 681 호 대학담론·학술교류 사라진 대학가 학술제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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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743
이해람

장기자랑, 골든벨, 맥주마시기… 담론은 어디로


학술제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대학 내 학부·학과별로 전공학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학생들은 학술제를 통해 학술동아리와 학회를 중심으로 한 해간의 성과를 교류하고 학술적인 논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학문 본연의 가치보다 취업이 더 중요해지고 학술동아리와 학회의 성격도 취업 지향적으로 바뀌면서 학술제는 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갔다.


낮은 참여율과 관심도로 학술제는 새로운 변신을 거듭해왔다. 법학과는 모의법정, 정치외교학과는 모의국회, 사학과는 시대극을 여는 등 극 형식의 학술제로 변신을 꾀했고, 퀴즈행사를 통해 상품을 증정하거나 해외어학연수 발표, 진로토크콘서트를 통해 진로탐색을 돕고 취업을 독려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맥주 빨리 마시기, 장기자랑, 경품추첨, 영화상영과 같은 이벤트성 행사들을 포함시켜 학우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온갖 노력을 시도한다.


대학가의 취업 지향적 분위기에 힘입어 학술제가 스펙 쌓기에 동원되는 공모전 형식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학술제에서 역시 순위로 줄을 세우는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이마저도 적은 참여율로 상금을 걸어야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학술제에 대한 관심은 차갑기만 하다. 학과 학생들에게 학술제에 의무적으로 참석할 것을 요청하기에 빈자리는 메울 수 있지만 타 대학은 고사하고 타과 학생까지 교류의 장에 불러오기 쉬운 일이 아니다.


2019년 현재 학술제의 지향은 ‘재밌는 학술제’이다. 따라서 학술제는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재밌는 이벤트’로만 가득 찬 채 간소화되고, ‘학술제’라는 고유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퇴색되어가고 있다. ‘시대에 발맞춘 변화’라고 이야기하지만 전문성, 학문적 다양성과 상상력, 사유와 토론 등 변증법적 과정이 사라진 학술제는 대학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1981년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과거 학술제, 학술교류를 통해 시대정신 공유


1966년 4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학술제는 독립된 행사가 아닌 대학 축제를 구성하는 행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학 축제 프로그램은 현재 학술제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의재판을 포함하여 민속예술제, 영어웅변대회, 전국대학생시국토론회, 음악회, 연극회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학 축제가 일종의 학술제로서 학문을 교류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학술제는 학부생 역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많은 학생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또한 과거 학술제의 특징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대학 담론과 시대정신이 학술제를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1985년에는 학원가 민주화운동이 지속되면서 ‘반독재 반외세 4월혁명’, ‘4.19와 민족통일운동’과 같은 학술제가 열렸고, 1989년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부마항쟁 10주년을 맞이하여 ‘시월 부마항쟁 계승제’를 진행했다. 1990년에는 데탕트 흐름 속에서 대학들이 연합해 북한 청년들과의 남북청년학술제 공동개최를 시도하기도 했다. 정부가 북한학생 초청을 불허하고 남측대표 학생들을 연행하면서 무산되었지만 1980~90년대 학생들이 학술제를 통해 저항적, 민족주의적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 중후반을 거치며 축제의 오락적 성격이 커지고 학술제와 분리되면서 축제와 학술제 모두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학술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키워야”


현재 학술제는 학부생이 스스로 필요한 의제를 던지지 못하고 담론을 만들지 못하며 시대정신도 없다. 학술제에서 학술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관점과 실천적 연구 없는 짜깁기식, 단순 나열식 연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극 형식 학술제 역시 정해진 대본과 좁은 무대 안에서 사유의 확장을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A대학에서 학부 학술제를 기획·운영한 한 학우는 “학생회가 재밌는 학술제를 만들어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반응이다”라며 “재밌는 것을 원하면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면 된다. 상금이 탐난다면 외부 공모전에 참여하면 된다. 현 시점에서 대학 학술제는 어느 방면에서나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술제가 당면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쌓아올린 지식을 학우들이 나눠야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