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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2020호외-3 호 [책으로 세상 보기] 고려인, 뿌리를 잃은 이들의 삶이란

  • 작성일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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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127
송수연

떠도는 땅┃김숨 지음 ┃ 은행나무 출판 ┃ 2020



고려인, 뿌리를 잃은 이들의 삶이란


만약 내가 태어나고 자라서 취직까지 한 곳에서 내쫓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착할 곳도,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주일 치 식량과 함께 난롯불 하나 없는 열악한 기차 칸으로 던져진다면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상상이 아닌 과거 우리의 현실이었다.


1937년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소련의 스탈린은 약 172,000여 명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외형적으로 유사하므로 일본의 간첩 활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이 사건으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은 모두 해고되었고 병원에 있던 이들은 강제 퇴원 처리되어 열차에 태워지게 된다. 탑승 전 준비 기간은 단 4일. 떠나기 4일 전 알게 된 조선인들은 겨우 1주일 치 식량만을 가지고 열차에 탑승한다. 


이 소설은 그렇게 열차에 탑승하게 된 아이가 있는 부부, 임산부, 노인 등 다양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열악해진다. 많은 이들이 죽고 병들며 막 아이가 있었던 부모는 아이를 잃고 기차 안에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던진다. 그러나 남은 동포들이 먼저 떠나간 이들을 하나, 둘 차가운 동토에 묻을 때도 가져온 씨앗을 끝까지 챙기는 등 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을 보며 참혹했던 현실에 마음이 아리는 한편 희망을 잃지 않는 고려인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또. 책을 읽으며 ‘청산리 대첩’에서 큰 공헌을 했던 홍범도 장군도 이렇듯 고려인으로 강제 이주하여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청소부로 일하시다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이렇게 강제 이주를 당해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종종 듣는 말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많은 이들이 ‘고려인’과 이들이 겪었던 비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있듯 비극은 잊지 말아야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한 번쯤 뿌리를 잃고 떠도는 존재들의 삶과 아픔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