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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0 호 [칼럼] 세상을 바라보며

  • 작성일 20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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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221
윤정원

 세상을 바라보며



                                                                                                                                                                                           글로벌경영학과 김은경 교수



  글로벌 신흥시장을 조사하고 탐구하는 강의가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세계여행은 언감생심, 대신 지구본을 곁에 두고 세계 곳곳을 둘러보곤 한다. 고백하자면 청소년 시절에 지리 과목을 싫어한 이래로 세계지도는 나에게 오랫동안 기피 대상으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신흥시장을 두루 조망하는 데 있어서 세계지도는 지정학적 형세와 국제관계와 땅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의 보고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창구로 다가온다.  



  신흥시장을 파헤치고 다루다 보면 국가별 흥망성쇠의 흐름 속에서 세상 이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미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예로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 정권으로 국민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라로 전락했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 직후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 경제 수준과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었던 필리핀은 부패정치와 부의 쏠림이 맞물리며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가 되었다. 그들이 넉넉했을 때 우리는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이 소원이었던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사랑하는 어린 손녀딸을 위해 보송한 쌀밥을 꽁보리밥 한편에 따로 여며 주었다는 돌아가신 그리운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는 흔한 예였다. 밥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의 역사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화두였다. 



  프랑스로 유학하러 갔던 첫해, 지방의 한 도시 디종에서 어학과정을 밟았었다. 그 지역 유지 한 분이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도 기숙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극동아시아의 학생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먹고 또 먹고 산책하고 쉬엄쉬엄 낱말 맞추기도 하고 다시 또 먹고 그렇게 종일 맛난 음식을 대접받았다. 가족 친지들이 모여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그 나라의 크리스마스 풍습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휴가기간 배곯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프랑스식 온정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날 우리는 막간에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기 위해 프랑스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백과사전에 꼬레 뒤 노르(북한)는 6쪽이고 꼬레 뒤 쉬드(대한민국)는 1쪽 소개가 되어있었다. 충격이었다. 아마도 북한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아직 경제 발전의 궤도에 오르기 전의 통계에 기초했기 때문이리라. 1986년 그해 디종 대학 언어 수업 시간에 나는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소개했는데, 같은 반 동급생 일리노이 주립대 한 학생이 우리나라는 독재국가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파리, 뱅센느에 방을 하나 얻었다. 석사과정 등록을 위해 상경해서 집을 셰어하는 연배 있는 한 커플인 프랑스 남자와 독일 여자, 공무원인 또 한 명의 프랑스인에게 나의 조국을 알리고자 파리 소재 한국문화원에 들러 홍보 책자를 받아 집안에 잔뜩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너희 나라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신이구나’였다. 1980년 서울역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반독재 시위도 했지만 그래도 내 나라는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에 법치가 살아있는 국가라고 믿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꾸만 나를 난감하게 하는 말들을 꺼내곤 했다. 어찌 나의 나라, 나의 조국을 조그맣고 볼품없는 그런 나라로 취급한단 말인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하늘을 찌르는 위상과 위엄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어로 랩을 하는 가수의 노래가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우리는 이제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버티어내었고 어느덧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엔 그렇게 작고 가난한 나라들이 그 곤핍한 상황을 극복하고 멋진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 



  발트해 연안에 자원도 땅도 그리 크지 않아 구소련의 누더기를 벗어 던진 후에도 여전히 앞날이 막막했던 나라가 있었다. 에스토니아, 그 나라는 남들이 하던 거 따라가면 이미 늦다고 선구자적 결단력을 보이며 IT를 선택했다. 우리가 다 아는 스카이프도 트랜스퍼와이즈도 이 나라의 창의력에서 나왔다. 우리도, 독일 정부도 벤치마킹한 전자정부 시스템도 이곳의 발명품이다.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의 살아남기는 이렇게 어느 리더의 걸출한 지도력으로 훌륭하게 성취되곤 한다. 결핍과 가난, 빈곤은 절망감을 안겨주고 발전을 의심하게 한다. 그렇지만 또 실로 가진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발버둥 치고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거기서 역전의 기적이 일어난다. 국가의 이야기가 그렇고 개인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미 몇몇 나라가 그것을 보여주었고, 몇몇 아니 많은 젊은 창업자들이 그러하다. 결핍과 가난은 결코 예찬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때론 엄청난 도약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