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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3 호 [교수사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 작성일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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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830
김상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복잡한 사건의 성격을 단순화하면 인식 과정의 효율성이 높아져 이해가 쉬워지지만, 단순화가 지나치면 정확한 이해가 어려워진다. 어떤 사건이든 복잡한 배경에서 온갖 요인이 작용해서 일어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일어난 전쟁은 배배 꼬인 실타래 마냥 유달리 복잡한 사건이다. 이 전쟁을 단순하게만 이해하면, 지구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시대에 우리의 대처가 부실해질 수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할 우리 상명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찬찬히 짚어볼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전쟁에서는 “인지전”의 양상이 도드라진다. 전쟁을 치르는 이와 지켜보는 이를 대상으로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의 전쟁 인식에 서사를 주입해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각별하다. 교전국은 늘 대의명분을 내세워 제 편을 늘리려 했지만, 이 전쟁의 경우는 한층 더 하다. 이제는 전쟁과 실제 전투의 실상이 소문, 사진, 보도가 아니라 드론에 달린 카메라로 세계 구석구석까지 전달된다. 전투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이가 수천만, 수억 명에 이르며, 이들의 인식은 승패를 가름하는 또 하나의 중대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와 서방 세계는 나름의 서사를 펼친다. “루스키 미르”, 즉 동슬라브인 권역을 침탈하는 적을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내고 러시아를 지키고자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러시아 측의 서사다. 이 서사의 효과는 동슬라브 문화권에 국한될 수밖에 없으며, 정작 “루스키 미르”에 들어가는 우크라이나에 먹힐지도 의문이다. 러시아의 서사에 서방 세계는 푸틴의 야욕에게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서사로 맞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이 곧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러시아의 서사보다는 서방 세계의 서사로 기운 셈이다. 하지만 서방의 서사에도 맹점이 있다. 그 맹점이란 우크라이나를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991년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가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를 들춰보면 당혹스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 20세기 초엽에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세력 상당수가 파시즘에 경도되어 인종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스테판 반데라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파시스트 민족주의 세력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세력이 “순혈 우크라이나인의 나라”를 우크라이나 땅에 세우겠다며 유대인과 폴란드계 주민 수십만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데라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으며,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 세력을 “네오나치”로 일컬으며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구실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척결을 내세운다. 푸틴의 주장과 달리, “네오나치”는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강하지 않은 세력이다. 하지만 그 세력이 우크라이나 정계에서는 그 수에 걸맞지 않게 큰 영향력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서방이 내세우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의 서사도 부당한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루스키 미르” 서사 못지않은 허구일 수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문제를 풀겠다며 전쟁을 택한 푸틴은 반데라가 염원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오히려 키워주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한편, 푸틴의 야욕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해석은 단순화의 극치일 따름이다. 21세기를 살아갈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이 전쟁을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내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이다.



                                                                                                                                                                                        역사콘텐츠전공 류한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