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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4 호 [책으로 세상 읽기] 비판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 책 <데미안>

  • 작성일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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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288
김상범

[책으로 세상 읽기] 비판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 책 <데미안>

▲데미안/ 민음사


  책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깨끗한 집안에서 그야말로 ‘선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집의 하녀들과 장인들이 집 밖에는 부랑자나 강도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는 ‘악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이 두 세계에서 강력한 대립을 느끼기 시작한다. 



데미안과 비판적 사고


  어느 날, 마을의 한 과수원에서 사과를 도둑맞았다는 사건이 입소문을 타고 돌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기 위해서 그 사과를 본인이 훔쳤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선의 세계’에 살던 그가 처음으로 ‘악의 세계’에 발을 담근 때였다. 그의 친구이자 큰 덩치를 가지고 있던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뒤로 불러 그를 과수원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고, 싱클레어는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크로머의 말에 따르기 시작한다. 그 뒤로 싱클레어의 삶은 매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때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이 바로 “데미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디 기댈 곳 하나 없었던 싱클레어는 크로머보다 힘도 세 보이고, 행동이 믿음직했던 데미안에게 본인의 잘못을 이실직고하는데, 어째서인지 크로머는 그 뒤로 싱클레어를 괴롭히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꼈지만, 또 다른 마음 한편에서는 알 수 없는 경탄이 떠오르곤 했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중간 내용이다. 후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거쳐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에바 부인을 만나며 성장해 나간다. 결국 항상 남들을 통해 답을 찾던 싱클레어는 본인의 내면에서 “데미안”을 찾게 되고, 이로써 그는 더 이상 데미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 “데미안”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비판적 사고”다.


  줄거리의 중간에는 데미안이 성경 속 이야기를 본인의 생각대로 재해석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충격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소설 속에는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피하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데미안의 특징을 따져본다면 아마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협박하는 내용에서 오히려 크로머의 약점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과수원 주인이 사과 도둑의 범인을 찾고 있지 않았다든지, 싱클레어를 협박해 받아냈던 돈이 알고 보니 고발 보상금보다 터무니 없이 많았다든지 말이다. 결국에는, 싱클레어 본인이 노력했다면 스스로 크로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상황들이 데미안은 가지고 있었던 비판적 사고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소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돌아보며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는 1877년 독일에서 개신교 선교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부모님들의 교육 방식은 엄격하기 그지없었고, 헤르만 헤세는 그 부모님들로부터 종교적 신념을 강요당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선교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방황의 삶을 이어 나갔다. 이후 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삶과 전쟁의 의미, 전쟁 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사려 깊은 생각은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발현되곤 했지만, 당시 나치즘을 표방했던 독일에게 유대인을 옹호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조국인 독일을 져버리고 스위스로 망명, 1962년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다양한 심리 치료를 동반했다. 특히 동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싯다르타>에서 불교적 색채를 강력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헤세의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기에, 일종의 정신 질환 치료 과정에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 볼 만하다. 이러한 정신적인 질환을 이유로 하는지, 헤르만 헤세의 문체가 ‘다소 난잡하고 쓸데없이 이상적이다’라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이 맥락에서, <데미안> 또한 전쟁의 참상과 그 이후의 시대를 글 속에 반영하는 것에 있어서 같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의 1946년 작인 <유리알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어지러웠던 판국을 이해하는 것에 헤세의 소설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하다고 가히 인정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세계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인간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내면의 길’이라는 생각에 집중했다. 세계 대전의 피로함을 느꼈던 그는 선의 세계-악의 세계로 나누어진 이분법적인 사고를 철저히 파괴하고, 그 누구도 선인이 아니고 또한 악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노력했다. 다시 말해, 전쟁의 참상을 겪고도 그것이 필수적이었고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주장하는 당시 유럽 사회의 이기적인 각국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며, 이는 비단 나치 독일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헤세는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데미안”이라는 비판적 잣대를 이용하여 스스로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가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이 데미안과 본인이 하나가 될수록 탄탄한 내면이 구축되고 이는 곧 사회로 확장된다는 사고 과정을 거쳤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선의 세계-악의 세계가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며, 그 속에서 기존에 정립되어있던 둘 사이의 경계가 붕괴하고 신시대로서의 사회가 정립되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오늘날까지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는 이 국제적인 아젠다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세계시민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상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