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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4 호 자그마난 볼펜 모나미 153

  • 작성일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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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077
임지혁

자그마난 볼펜 모나미 153



정기자 201710846@sangmyung.kr임 지 혁



  오늘도 어딘가의 책상에서 굴러다닐 흰 색에 검정색, 어쩌면 육각 연필과도 비슷하게 생긴 볼펜 한 자루, 모나미 153을 집어 들고서는 주머니에 넣었다. 필자는 그 후에야 문을 열고 나서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는 한다. 문구점에서 300원 정도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면서 요즘은 더러 특이한 외관을 가진 특별판들도 눈에 들어온다. 153은 우리들의 일상 다반사의 잡담에도 종종 등장한다.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력고사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모나미 153 한 자루를 다 썼다고 이야기하시고, 어떤 기자는 휴대하면서 잉크가 새지 않아서 모나미 153을 애용했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에는 유니의 제트스트림이나 파이롯트의 프릭션 등 수입산 볼펜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 모두 모나미 153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모나미 153은 단순히 저렴하고 자그마한 볼펜 한 자루를 넘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1 : 지상자에 담긴 모나미 153 볼펜들. 2004년 경]

텍스트, 실내이(가) 표시된 사진  자동 생성된 설명

  

  취향에 따라서 주머니 속, 혹은 필통 속에서 꺼내어 한 손으로 노크하고, 그렇게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다 썼다면 단순히 튀어나온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부품을 눌러주어서 심을 다시 몸체 속으로 넣으면 된다. 글을 쓰면서는 흔히 말하는 ‘볼펜 똥’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것들은 많이 좋아져서 글을 쓰는 데 불편하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 과정, 오늘은 그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볼을 굴려 가며 잉크를 묻히는 필기구인 볼펜의 특허는 1888년에 처음 등록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때의 것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 반 세기가 지나서 1938년에 이르면 더 실용적인 볼펜의 특허가 등록되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는 마침내 미국 맨허튼의 어느 백화점에서 볼펜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4년 뒤인 1949년에 이르면 일본에서도 볼펜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후로 일본의 수많은 문구 업체들이 볼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회사들 가운데 AUTO(현 OHTO, 이하 오토)는 1962년 326이라는 볼펜을 개발한다. 당시의 저렴한 볼펜들은 요즘의 네임펜처럼 뚜껑이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326은 뚜껑을 열어야 할 필요 없이, 단순히 끝을 눌러주는(노크) 것으로도 글을 적기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노크식 볼펜은 있었지만 오토는 경제적이면서도 간결한 구조로 구현하였고, 이를 통하여 일본에 노크식 볼펜을 보급하게 된다. 요즘에도 많은 일본의 볼펜들이 노크식 구조를 가진다.

모나미 153은 지금도 한국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온전히 한국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토 326이 나오는 그 즈음에 작년 초에 타계하신 모나미의 설립자, 고 송삼석 모나미 전 회장이 일본의 오토 사와 접촉한다. 당시 광신화학공업사라는 이름이던 모나미, 그리고 일본의 문구 기업 오토의 만남은 유별나게도 5.16 쿠데타에서 시작한다. 1962년 군부는 반란 1주년을 자축하며 국제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여기서 송삼석 전 회장과 일본 우치다 양행이 함께 참석했다. 이 때 송 전 회장은 우치다의 소키쿠 과장이 사용하던 볼펜을 목격하고서는 한국에 출장 온 소키쿠 과장을 극진히 대접한다. 결국 1962년 7월에는 우치다에 볼펜을 납품하던 오토볼펜주식회사를 소개받으며 모나미는 볼펜 제조의 첫 발을 떼었다. 송 전 회장은 오토로부터 볼펜 볼 등을 수입하는 대신 볼펜 잉크 제조 기술 등을 도입하며 귀국하였고, 연구와 개발 끝에 모나미 153이라는 이름의 볼펜을 출시한다. 이름이 왜 모나미 153이었을까? 당시에는 교육 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사내에 한불사전을 끼고 사는 불어를 좋아하는 직원이 있었다고도 한다. 때문에 불어의 기본적인 문장이었던 Mon Ami(나의 친구)라는 단어가 사내 이름 공모전에 제출되었을 때 이에 호응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153이라는 숫자에는 요한복음의 “그물에 가득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153) 마리라.”라는 구절에서 빌려왔다고도 하고, 1963년 5월 1일에 볼펜 잉크 개발이 완료되어 그런 이름이라는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3번째로 만든 15원짜리 볼펜이라는 의미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 모나미의 송하경 회장이 153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잉크 노하우보다도 비밀’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세 가지 이상의 이유가 붙을 정도이니 오히려 이 볼펜에 153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과정들을 거치어서 마침내 MonAmi 153이라는 이름을 가진 볼펜이 탄생한다. 이는 오토 326과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볼펜이었다.


[그림 2 : 모나미 153 볼펜들의 모습]

실내, 필기구, 문구, 바닥이(가) 표시된 사진  자동 생성된 설명


  한국과 일본의 우연한 만남, 그 결과 오토 326과 모나미 153이라는 쌍둥이 볼펜이 세상에 출시되었지만 그 말로는 사뭇 달랐다. 오토 326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혔고, 반면 모나미 153은 올해면 벌써 60년 동안 한국 사람들의 곁에 함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세대 정도만이 그것도 아주 간혹 오토 326이라는 볼펜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왜 이런 차이점이 생겼을 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잠시 연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은 어쩌면 일본보다도 연필에 친숙한 나라다. 요즘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1960년 경까지도 연필은 한국인에게 굉장히 귀중한 서구 필기구였다. 당시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필기구라고는 만년필, 볼펜, 샤프펜슬 등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미국이나 일본산의 고가 수입품이기 때문에 함부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반면 연필은 국내에서 그 원료를 구할 수 있고, 때마침 국내에 제조 시설도 존재하였다. 연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서양식 휴대용 필기구였던 것이다. 모나미가 세상에 나오던 즈음, 그런 옛날의 한국 시장에서는 연필 모양의 디자인이 더더욱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육각형 몸체에 검정색 끝 단을 가지는 연필과 비슷한 볼펜, 오토 326은 머지않아 일본에서 단종되지만 한국에서는 그 외형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음은 이렇듯 그 디자인이 한국에 더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나미 153의 디자인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꼭 들었고, 그래서 국내의 다양한 업체들이 비슷한 모습을 가진 다양한 볼펜들을 출시했다. 오늘날에도 문구점에서 153과 유사한 모습을 가진 다양한 볼펜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약 이렇게 비슷한 모습의 볼펜들이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나왔다면 153은 그 매혹적인 외관만으로 시장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모나미 153은 그 전통적인 외관의 모습을 유지하는 대신 그 내부는 끝없이 변화했고, 그렇게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모나미는 우치다 양행은 물론, 세일러만년필이나 주우화학 등 일본의 문구 회사들과 끊임없이 접촉하였으며 나중에는 유럽의 문구 회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전 세계의 기술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153은 유연하게도 사람들이 더 쓰기 편하도록 바뀌었고, 더 내구가 높아지도록 바뀌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 3 : 2004년의 모나미 153과 2018년의 모나미 153의 비교. 위가 2004년, 아래가 2018년이다.]

텍스트, 바닥, 필기구, 문구이(가) 표시된 사진  자동 생성된 설명


  만약 새로 볼펜을 사려고 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모나미 153을 선택하겠지만 우선 그것은 제외하기로 하자. 한편 요즘 문구점에는 우리들의 눈길을 끄는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다색 볼펜들이 많지만 일단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검정, 파랑, 빨간색 볼펜만 생각하기로 하자. 이 두 가지 조건 속에서 볼펜을 고르면 많은 사람들이 매끄럽게 글이 적히는 볼펜을 선호한다. 조금 뻑뻑하면서도 탄탄히 적히는 것보다는 부드러우면서 걸림이 없고, 그러면서도 진하게 적히는 볼펜이 인기가 많다. 이런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유명한 볼펜이 바로 지난 2006년 일본의 문구 기업 유니가 선보인 제트스트림(Jetstream)이다. 제트스트림은 점도가 낮은 잉크를 기반으로 매우 매끄러우면서 부드러운 필기감을 구현한 볼펜이다. 컴퓨터처럼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필기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제트스트림에 열광했으며 어느새 ‘저점도 잉크’는 볼펜 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그렇다면 153은 어떨까? 문구점에 새롭게 입고된 모나미 153의 포장을 풀고, 다시 종이에 적어본다면 제트스트림과 비슷하게 매우 묽고, 부드럽게 글이 적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제트스트림을 애용하는 독자라면 요즘의 모나미 153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나미 153이 처음부터 이런 잉크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새 상태의 1994년산 모나미 볼펜을 사용해보면 그 시기의 다른 볼펜들과 비슷하게 다소 뻑뻑하면서 탄탄하게 글이 적힌다. 글씨를 적는 데 힘은 다소 들지만 조금 더 꼼꼼하면서도 정갈하게 적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그것보다도 이전의 것은 어땠을까? 필자는 아직 정상적으로 잉크가 나오는 먼 옛날의 153을 찾지 못했으나 옛날에 그것을 사용했던 분들께 여쭈니 또 다른 필기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연필과 비슷한 외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그 속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게 바뀌었다. 여기에 2007년경에 볼펜의 구조가 다소 바뀌는 등, 그 내구 또한 개선되면서 지금의 모나미 153은 변하지 않는 외관,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유연한 내부까지 겸비하면서 완벽한 볼펜에 이르렀다.


  일본의 어느 볼펜에서 얻은 모티브는 그렇게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마음에 들면서도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보기에도 쓰기에도 좋도록 발전시켰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3년 모나미 153의 출시 50주년을 기념하여서 만든 한정판 제품은 모나미가 맺은 하나의 과실일 것이다. 이 볼펜은 2만 원의 가격을 가지고선 1만 자루를 한정으로 생산했는데 출시되던 때에 웹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빠르게 완판했다. 그렇게 모나미 153은 단순히 자그마한 싸구려 볼펜이 아닌, 그 이름처럼 ‘나의 친구’이자 일종의 문화적 상징임을 증명했다.


[사진 4 : 2021년에 모나미 153의 고급형으로 선보인 독도 특별판]

필기구, 문구, 실내, 펜이(가) 표시된 사진  자동 생성된 설명 


  모나미 153이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아마도 이를 기념하는 새로운 볼펜이 나올 것이다. 우리들의 친구, 어느 조그마한 볼펜의 환갑 잔치, 그것은 우리들의 미래에 어떤 형태로서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줄까.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파란색 153 볼펜을 바라보며 잠시 상상에 잠겨본다. 마침 사용하던 153 한 자루의 잉크가 얼마 남지 않은 참이다.



[참고자료]

송삼석. (2003). “내가 걸어온 외길 50년”. 한국일보사.

메인사진 _ 모나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pUcAe3PUJG/